적응 기간
어떤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금단 기간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금단이라는 걸까요? 여러분의 몸은 알코올을 갈망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그럴 일이 없습니다. 몸이 원한 것은 오직 그 독을 없애는 것뿐이었습니다. ‘금단’이라는 말 자체가 극심한 고통과 어느 정도의 통증을 겪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숙취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몸이 여러분을 위해 독을 없애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그저 여러분을 살아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신체적 금단 역시 좋은 것입니다.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먼저 장과 간의 독을 배출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코올에서 나온 독소 중 해를 끼치지 않도록 세포 안에 저장해 두었던 것들을 모두 내보냅니다. 몸에서 독을 몰아내는 것이고, 그와 함께 마음에 남아 있는 세뇌도 모두 사라집니다. 술을 많이 마시던 여러분이 술을 끊은 뒤 몸을 약간 떤다면, 이것은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되는 독 제거 과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몸이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그 과정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첫날 아침 이후의 신체적 불편함은 아주 미미하며 10일 안에 사라지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3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정신적 적응은 조금 더 오래 걸리지만, 사실 술을 끊는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설명해 보겠습니다. 몇 년 동안 타던 차에서 방향지시등 조작 장치는 운전대 축 한쪽에 있고 앞유리 와이퍼 조작 장치는 반대쪽에 있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다른 차를 사면 늘 그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꼭 일이 그렇게 꼬인다니까요. 방향지시등을 켜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와이퍼가 켜집니다. 와이퍼를 켜고 싶었습니까? 아닙니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뇌가 아주 오랫동안 조건화되어 자동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며, 여기에는 1주에서 3주가 걸립니다. 그 후에는 모든 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덫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이렇게 됩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방향지시등 대신 와이퍼를 켜는 실수를 했다면, 와이퍼를 빤히 보며 ‘이런, 이 새 차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난 절대 적응 못 할 거야. 예전 차를 되찾아야겠어’라고 혼잣말을 하겠습니까? 물론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을 걱정하기나 할까요? 다시 생각이나 할까요? 실제로는 방향지시등 대신 와이퍼를 켜면 웃음이 나고, 첫날에는 10분마다 그런 실수를 합니다. 그게 신경 쓰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결국 이유는 단순합니다. 뇌와 몸이 적응하기를 그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적응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안다는 것이 모든 의심을 없애 버렸고, 그래서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 것입니다. 확신의 힘은 실제로 그만큼 강력합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잔을 비운 뒤 여러분은 끝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쉽게 느껴질지 아닐지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덫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느냐에 따라 특정한 때에 술을 마시도록 조건화되어 왔습니다. 그때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일 수도 있고, 주말, 점심때, 저녁 식사를 할 때,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축하하는 자리, 혹은 그 밖의 어느 때라도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요점은, 술을 끊은 뒤에도 여전히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밥을 먹고—물론이지요—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뇌와 몸이 적응하도록 내버려 두고 걱정하지 않는다면, 뇌와 몸은 쉽게 적응하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처음 몇 주 동안 나타날 수 있는 어떤 유발 신호든 와이퍼와 방향지시등의 경우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순간들은 안도하고 설레어야 할 때입니다.
이따금 ‘술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걱정할 일이 전혀 아니며,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우리 대부분은 감옥에 있을 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술을 끊는 모든 과정이 쉽고 즐거워지며, 그 결과가 영구적으로 지속됩니다. 혹시 술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마음속 와이퍼가 찰나의 순간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움직인 것뿐입니다. 스스로 ‘한잔 마시면 안 돼’, ‘한잔도 마실 수 없어’, ‘언제쯤 자유로워질까?’라고 말한다면, 이 모든 과정의 목적 자체를 무너뜨리고 투덜거리는 금주자가 될 것입니다. 그저 방향지시등을 켜고, 적응하고,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세요. 이것은 술을 끊는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측면 중 하나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자유로워졌으니 더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울 수 있습니다. 처음 두어 주 동안 유발 신호가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이런 순간들을 즐길 수 있고, 실제로 즐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의지력이 아니라 적응입니다. 둘을 혼동하지 마세요.
의지력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하고 싶은 어떤 일을 하려는 욕구와 끊임없이 싸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지력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단 1초라도 허용하면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의심이 있는 곳에는 불확실성이 있고, 불확실성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의지력이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술 한잔하고 싶다’는 유발 신호를 경험했을 때 술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이로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의지력에 의존하기 시작할 것이고, 순식간에 구덩이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술 한잔하고 싶다’는 유발 신호를 경험했을 때 정말로 아무런 이로움도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그저 유발 신호일 뿐이며 와이퍼를 끄고 방향지시등을 켜듯 빠르게 떨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입니다. 평생 이렇게 해야 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처음 두어 주 동안은 여러 번 자신을 쉽게 다시 조율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이 무척 즐거워서 저절로 하게 될 것입니다. 의지력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참아야 할 때뿐입니다.
이 적응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여러분은 병을 굶겨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지배하던 것을 이제는 여러분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저도 정확히 그렇게 보았습니다. 저는 그 병이 제 친구라고 믿도록 속아 넘어갔기 때문에, 제 삶의 여러 측면을 지배하던 병에 계속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삶을 더 즐기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불안감까지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깨닫자,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굶겨 죽였습니다. 의지력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먹이를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제 삶에서 그것을 영원히 몰아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바라본다면 적응 기간을 반기게 될 것입니다. 괴로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약물 중독의 슬픈 현실은 끊임없이 의지력과 자제력을 발휘하고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중독자이며, 그런 상태가 평생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약물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의지력도, 자제력도, 통제도 필요 없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한 남성이 저와 상담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그냥 몇 주 뒤의 미래로 보내 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최악의 시기는 끝나 있을 테니까요.’ 상담이 끝날 무렵, 그는 병이 굶어 죽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서라도 적응 기간을 겪고 싶어 했습니다. 복수를 좀 하고 싶었기에 그 병을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최악의 시기는 이미 끝났고, 더는 술이 필요하지도 마시고 싶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말대로였습니다. ‘마셔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또 다른 흔한 오해는 술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다면 더는 술 마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아주 중요한 점을 짚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틀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