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적인 상황

대체 어떤 유혹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런 상황은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유사 늪에서 끌어내 주었다면, 다시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느낄까 봐 특정한 상황을 피해야 할까요?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고 마실 필요도 없으며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에 안도한다면, 왜 그런 상황을 피해야 합니까? 술이라는 덫의 본질을 이해하면 좋은 점은 어떤 상황도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핵심 방법 중 하나는 반드시 그런 상황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순간은 피할 것이 아니라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

그 3개월 동안 술을 참고 지낼 때 저는 술을 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하다고 생각되는 특정한 상황들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했고, 어쩌다 나가더라도 전보다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제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때는 다른 어느 때보다 술을 마시고 싶은 유혹이 훨씬 강했지만, 유혹을 느낀다면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말로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유혹을 느낄 만한 상황을 피하라는 조언은 어차피 터무니없습니다. 도대체 얼마 동안이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AA 같은 단체들에 따르면 영원히 피해야 합니다. 꽤 막막한 전망이지요? 그러면 술 없는 삶은 따분하고 지루하고 비참하다는 믿음만 정말로 굳어질 것입니다. 이는 다시 더 큰 박탈감을 일으켜, 술 한 잔 마시고 싶은 유혹 정도를 넘어서는 심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회복입니다. 저는 이것을 궁핍이라고 부릅니다. 그 3개월 동안 제게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술을 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조언은 더욱 어리석습니다. 그렇다면 유혹을 피하려면 다시는 눈을 뜨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까? 하긴 그러면 그들의 술 문제는 확실히 영원히 해결되겠군요.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피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하면 뇌에 완전히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게 되고, 술이 없으면 삶이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테니까요. 사람들은 종종 ‘펍은 피해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왜요? 채식주의자가 티본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유혹을 느낄까 봐 식당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어디에 있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기를 먹고 있더라도 고기를 먹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습니다. 고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유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펍을 포함해 어떤 상황도 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진짜 즐거움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서 얻는 것이니까요. 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늘 펍에 가고 싶지는 않아질 수도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벨벳 무늬 벽지와 꽃무늬 카펫, 담뱃불에 탄 자국, 술 냄새, 사람들의 기분 변화, 그리고 많은 펍에 깔린 전반적으로 칙칙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많은 펍이 실상을 더 잘 드러내도록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옛 여관’, ‘백마’, ‘왕관과 닻’ 대신 ‘옛 구토 여관’이나 ‘광대와 딸딸이꾼’, ‘폭력 선술집’은 어떨까요?

모든 펍이 이렇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펍의 주된 목적은 사람들이 약물을 투여받을 수 있게 해 주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펍과 와인 바, 클럽에 갑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술 한 잔이 그 저녁을 더 좋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저 그날 저녁이 별로이거나 제게 그럴 기분이 없을 뿐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저는 진심으로 술을 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지내려고 갑니다. 물론 늘 가던 낡고 칙칙한 동네 펍에서는 때로 그러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삶에 얼마나 더 많은 것이 있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만두는 것은 술을 마시는 일이지,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마음과 몸에서 그 독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나면 새해든 생일이든 휴가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술이 아쉽지 않을 테니까요. 예전처럼 춤을 추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불꽃놀이를 하고, 좋은 친구들과 웃으며 신나게 즐기고 축하할 수 있습니다. 달라지는 점은 그날 저녁의 모든 일을 기억하고, 다음 날 상쾌하고 생기 넘치는 기분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직접 운전해서 집에 올 수 있다는 덤까지 생깁니다.

이것은 이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술 문제에서 또 하나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세뇌가 너무나 심해서 ‘축하하다’라는 말이 약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약물이 바로 알코올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갖 일을 술로 축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천 번이나 접해 왔기 때문입니다. 생일이든 복권 당첨이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축하할 핑계라면 무엇이든 찾습니다. 그리고 축하한다는 것은 곧 술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스포츠는 언제나 좋은 핑계가 됩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한잔합니다. 응원하는 팀이 지면 한잔합니다. 하나는 축하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슬픔을 술로 달래기 위해서입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주최 측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샴페인 한 병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샴페인이라고 해 봐야 대단한 것처럼 떠들어 대는, 거품이 나는 상한 과일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술과 축하를 연결하도록 너무나 조건화되어 있어서, 앞서 이야기한 잉글랜드 축구 선수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고 세상에 알린 뒤에도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히자 샴페인 한 병을 받았습니다. 일부러 약을 올리려던 걸까요?

한 여성이 담배를 끊기 위한 집단 상담을 받으러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상담이 끝났을 때, 소규모로 모인 그 사람들 중 그 여성만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문 일이었습니다. 비흡연자가 되는 것이 기대되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축하하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축하하는 게 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왜 그러고 싶지 않으세요?’ 그 여성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회복 중인 알코올 중독자인데, 방금 저한테 술을 마시라고 하셨잖아요. 정말 배려가 없으시네요. 이제 저는 진정으로 축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솔직히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 여성에게 나가서 축하주를 마시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축하하세요’라고 했을 뿐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 말을 술과 연결한다는 사실을 저는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가수 에릭 클랩턴은 해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파티를 엽니다. 손님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과거에 중독을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함께 축하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파티를 여는 것입니다. 왜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함께 축하할 수 없을까요? 무엇이 그를 막고 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 그의 믿음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자신은 비정상이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정상이라고 믿는 한, 그는 언제나 자신이 흔들리기 쉽다고 느낄 것입니다. 문제가 약물의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에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 대다수에게 축하란 곧 술입니다. 둘이 으레 한데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저는 이제 이 사기에 말려들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좋은 음악과 웃음을 즐기며 축하합니다.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날이나 그 상황을 기분 좋게 느끼는 것입니다. 제 상담실을 찾았던 그 여성은 3년 동안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술에서 회복 중이라고 믿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 여성이 자신이 축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날 하루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것조차 축하할 수 없습니다. 그 여성에게 축하란 술을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성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어떤 자리도 피하지 마세요. 이것이야말로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방법의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제가 드리는 핵심 지침 중 하나입니다.

앞서 들었던 비유를 다시 쓰자면, 이따금 여러분의 앞유리 와이퍼가 작동하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근육을 키움으로써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와 같은 수백만 명을 아주 교묘한 사기의 희생자로 만든 거대한 술 세뇌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술을 끊는 고통이란 근거 없는 믿음입니다. 모두 마음속에 있을 뿐입니다. 술을 끊는 것은 쉽습니다. ‘회복’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은 오직 박탈감이었습니다. 과거에 술을 끊거나 줄이려 할 때 여러분이 어떤 상황들을 피하게 된 것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상황들을 피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더 많은 상황을 더 자주 즐길 수 있습니다. 더는 약물의 노예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삶을 살아갈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큰 자유와 기쁨까지 느끼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밖에 나가 ‘술 아닌 한잔’을 즐기고, 술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즐기세요. 그것은 멋진 기분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분입니다.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고 여러분의 자유를 기뻐하세요. 상황을 피하고 있다면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피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완전히 자유롭게 참여하세요.

사람들이 제게 자주 묻는 또 다른 질문은 ‘술 대신 뭘 마시나요?’입니다. 충분히 논리적인 질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에서 또 하나 아주 중요한 부분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필요하지 않으며, 찾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