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다른 사람들

주류 업계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약물을 광고하는 데 말 그대로 수십억의 돈을 쓰지만, 정작 영업사원들에게 돈을 받습니다.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이야말로 주류 업계가 거느린 최대의 영업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AA에 다녔다고 말한 코미디언 Jack Dee조차 텔레비전에서 술 광고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술 마시는 사람 대부분이 주류 업계를 위해 일한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본인들은 그런 줄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술을 끊고 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때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돌이켜 보면 저도 분명 그랬습니다.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제 몫을 했습니다. 한때는 제 친구 하나를 중독시키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그 친구는 평생 술을 한 번도 마셔 본 적이 없었고, 마시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 철저히 세뇌되어 있었기에 그 친구가 왜 술을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외출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서, 한잔해. 너 왜 그래? 네가 뭘 놓치고 있는지 정말 모르는구나.’ 심지어 ‘네가 술을 안 마신다니 정말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약물에 중독되면 그것 없이 어떻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지가 수수께끼가 됩니다. 이제 제게 수수께끼인 것은, 중독되어 있던 그때 제가 즐겁게 살고 있다고 대체 어떻게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슬픈 현실은, 여러분이 괴로워하기만 한다면 술을 마시는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이 술을 끊어도 정말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얼마나 오래 술을 안 마시고 버티는지 지켜보는 놀이쯤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울적해하고, 신경이 곤두서고, 우울해하고, 술 한잔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술을 끊은 것을 행복해하면 싫어합니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약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술 없이도 인생을 즐기고 어려움을 쉽게 감당하면, 의도치 않게 바로 그 사실을 일깨우게 됩니다. 그러니 경계하십시오.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을 끊임없이 정당화해야 하는 그들의 필요 때문에, 여러분을 다시 중독시키려 들 수 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담배를 끊으면 영웅이 되지만, 술을 끊으면 괴짜 취급을 받습니다.

그들은 ‘해 보니 어때?’, ‘어떻게 돼 가?’, ‘아직 초반이잖아’ 같은 말을 하거나, 단골 질문인 ‘아직도 술 안 마셔?’를 던질 겁니다. 이런 태도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죽는 날까지 그 질문을 듣게 됩니다. 저도 술을 끊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이스, 아직도 술 안 마셔?’, ‘그럼 이제 얼마나 된 거야?’, ‘어떻게 느껴져?’ 뭐가 느껴지냐고요? 대체 뭘 찾아내야 한다는 겁니까? 누군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면, 일주일 뒤에 전화를 걸어 ‘아직도 운전할 수 있어?’라고 묻습니까? 물론 그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술을 끊고 평생 그 사실을 행복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도록 너무나 오랫동안 조건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여러분이 언제 유혹에 굴복할지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술이 실제로 어떤 이로움을 줄 것이라는 광고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만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유혹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매력도 없는 것에 유혹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여길 때만 그것에 ‘굴복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술을 끊을 때 가장 좋은 점입니다. 우리가 믿도록 길들여진 내용과 달리, 알고 보면 포기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포기했다’는 표현 자체가 희생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끊은 뒤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포기해 희생했다고 믿는 것이지요. 물론 말도 안 됩니다. 실제로는 진행성 질병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중독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홍보하며 엄청난 희생을 하는 쪽은 술을 마시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건강과 돈, 용기와 자신감,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입니다. 본인들이 알든 모르든 그들은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이며, 따라서 진행성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안타까워할 일입니다.

어쨌든 ‘술 안 마시니까 어때?’라는 질문은 우스꽝스럽습니다.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술 마시는 건 잘돼 가? 숙취, 기억 상실, 돈 드는 것, 말다툼, 무기력, 노예 상태, 마시는 양을 조절해야 하는 것 같은 건 어때?’ 제 말을 믿으십시오. 그들은 곧 화제를 바꿀 겁니다. 아마 ‘나는 숙취가 없어’ 같은 뻔한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약물에 대한 내성이 너무나 커져 숙취가 일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다른 약물 중독자들처럼 자신이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그저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왜 술을 마시기로 하는지 정당화하려 합니다. 특히 술을 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구나 그 사람이 술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고 더는 그 약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술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변명뿐입니다. 어린 친구에게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물으면 ‘즐거워서요’라고 할 것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즐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묻는 사람에게도, 대답하는 사람에게도 분명합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몸서리를 치고, 잔뜩 취하고, 다음 날에는 몸 상태가 엉망이 됩니다. 처음 술을 마실 때 토하는 사람도 있고, 차라리 레모네이드를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제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것은 어른답지 못하다고 믿도록 조건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시험 삼아 마시는 동안에도 ‘즐거워서요’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음주를 정당화하려 하고, 그 시도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몇 주 뒤 같은 친구에게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물으면 이제는 ‘맛이 좋아서요’라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는 더 이상 그 맛이 역겹지 않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물으면 ‘용기와 자신감을 주고, 긴장을 풀어 주고, 행복하게 해 줘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불과 몇 달 만에 술은 기분을 끔찍하게 만들고 맛도 지독했던 것에서, 맛도 좋을 뿐 아니라 버팀목까지 되어 주는 것으로 바뀝니다. 술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달라진 것은 그 친구가 술을 바라보는 인식뿐입니다.

우리는 평생 술잔을 들 때마다 자신이 왜 마시는지 정당화하려고 이유를 바꾸지만, 진짜 이유는 언제나 같습니다. 바로 알코올 중독입니다. 그러니 경계하십시오. 술을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할 테니까요. 그들은 그럴듯하고 논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말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술을 끊는 것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자신들은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여러분이 해내면 여러분을 다시 끌어들이려고 무슨 짓이든 하려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소식 들었어요? 전 이제 술을 마실 필요가 없어요. 자유로워졌다고요.’ 사실 충분히 말할 만한 일입니다.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고 병의 진행을 단번에 멈추는 일이 날마다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십중팔구 이런 반응을 더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됐는데요? 너무 일찍 장담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아직 시작일 뿐이잖아요.’ 도대체 시간이 무슨 상관입니까? 자유롭기만 하다면, 자유로워진 지 얼마나 되었는지가 정말 중요합니까? 이른바 ‘회복’이라는 것은 고작 그런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날짜를 세는 것이지요. 그런데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해냈어요. 이제 술을 마실 필요가 없어요. 자유로워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입니까? 사실은 첫날부터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첫날부터 그렇게 말한다면 첫날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입니다. 첫날에 그 말을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언제 할 생각입니까?

술을 끊으면 날짜를 셀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이 방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유로워졌다면 날수를 세지 마세요.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는 사실을 아는 바로 그 순간부터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감옥입니다. 풀려난 뒤에 사람들이 날짜를 세는 유일한 감옥이니까요.

술이라는 사기는 이처럼 교묘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실제로 믿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여러분이 왜 술을 완전히 끊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여러분을 ‘알코올 중독자’로 보고 있었다면, 이제 더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여러분을 안쓰러워할 것입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쪽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면 여러분이 그들을 안쓰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빼앗기고 있는 쪽이 그들이며, 자신이 의존하는 약물을 통제하려 애써야 하는 쪽도 그들이라는 사실이 아주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여러분은 그 무엇도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다.

상황의 실상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술을 끊은 지 얼마나 되었든, 무언가를 놓치고 결국 빼앗기고 있는 쪽은 불쌍한 음주자들입니다. 그들은 건강, 돈, 뇌세포, 기억력, 감각, 마음의 평온, 용기,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물 중독자들이며, 여러분은 그들의 실체를 진정으로 알아보는 최초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헤로인 중독자를 부러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알코올 중독자는 부러워합니까?

부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고 안타까워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애초에 우리 모두를 중독에 빠뜨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늘 기억하십시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일을 맡는다면, 저는 아이를 데려다가 대신 하게 할 것입니다. 환상을 진실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게 그 환상을 믿게 만드는 데 더 적합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술을 마시는 사람들 자신도 속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환상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는 다른 사람들의 힘과 그들이 퍼뜨리는 엄청난 양의 세뇌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거리의 부랑자부터 미국 대통령까지, 모두가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술을 마시도록 조건화되어 왔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조차 여러분이 열 살 때 식사와 함께 와인 한 잔을 조금 마시는 것쯤은 해롭지 않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와인 한 잔 조금 마시는 게 뭐가 나빠?’라는 말은 ‘헤로인 조금 하는 게 뭐가 나빠?’라는 말과 거의 같습니다. 둘 다 약물이고, 둘 다 중독성이 있으며, 둘 다 삶을 파괴합니다. 유일한 차이는 하나는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 있고 모든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사교를 돕고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 행복의 알약으로 권장되지 않는 반면, 다른 하나는 그렇다는 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헤로인과 알코올의 유일한 차이는 하나가 합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 인식되고, 다른 하나는 중독자의 관점에서 인식됩니다.

알코올의 가장 큰 문제는 헤로인과 달리 중독이 너무도 은밀하게 진행되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끝내 깨닫지 못한 채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의존 상태를 알았더라도, 불치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은둔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야 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알코올 중독증이라는 그 정체불명의 병 말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약물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속임수와 거짓말로 자신의 음주를 계속 정당화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특히 자기 자신에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핵심이 흐려지게 두지 마십시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든, 무슨 말을 하든, 진실은 그들이 중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지만, 그들은 덫에 걸려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으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점점 더 악화되는 병을 앓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통제하려 애써야 하고, 그것은 곧 통제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결코 진정한 통제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약물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일종의 고문입니다. 결국에는 언제나 약물이 피해자를 통제하며 중독자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 반대가 아닙니다. 그들이 계속 중독 상태에 머물거나 다시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석 달 동안 술을 끊었다가 다시 마셨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제가 통제할 수 있으니 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것을 왜 굳이 통제하려 합니까? 왜 병을 없애 버리는 대신 통제하려 합니까? 자신에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약물을 관리하려고, 단 한 번뿐인 삶의 나머지 시간을 의지력과 자기 절제에 기대어 보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진짜 즐거움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그것을 통제하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것도 놓치고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우리 모두를 중독에 빠뜨린 것이 바로 그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HIV 감염이 본격적인 AIDS로 진행되기까지 25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HIV에 감염된 사람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아마 더 심한 병으로 이어질 질병을 가진 사람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안쓰러워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알아야 할 사실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각하든 못 하든 술의 덫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 진행성 질환의 서로 다른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중독됐고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모르는 게 약이니까 술을 마셔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이 그 유사, 즉 모래 늪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심지어 그 안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고 믿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다가가서 여러분의 동의도 없이 끌어낸다면, 여러분은 제가 재미를 망쳤다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당장 다시 뛰어들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유사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여러분이 사실은 갇혀 있으며 빠져나올 가능성도 없이 아래로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 준다면, 그래도 다시 뛰어들고 싶겠습니까?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갈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겠습니까? 당시에는 재미있게 놀고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겠습니까? 모래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다른 사람들을, 아직 허리까지만 빠져 있다고 해서 정말 부러워하겠습니까? 아니면 안쓰러워하며 끌어내 주려 하겠습니까? 당연히 돕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의 도움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때에야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그전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유사 속으로 가라앉다가 마침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도움을 청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도움 대신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말입니다. 인구의 80퍼센트도 유사 속에 있지만 그들은 아무 문제 없이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전혀 가라앉고 있지 않으며, 사실 문제는 여러분에게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저 유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고, 빠져나오려고 도움을 구하면 치료법 없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영원히 사회에서 따돌림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 일을 자신은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남은 평생을 비참하고 우울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도움을 구하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선뜻 도움을 청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를 그토록 답답하게 만듭니다. 이상한 비유라는 것은 알지만, 이 문제에 들어맞는 비유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도움을 구하기가 너무나 수치스럽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뜻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술은 그 자체로도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평생 나약하고 병에 찌든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더해지는 것만큼 불필요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술을 마시는 다른 사람들을 절대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부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술을 끊은 지 얼마나 되었든 이 점을 기억하십시오. 음주에 관한 사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사실이 여러분과 얼마나 관련이 있느냐뿐입니다. 몸과 마음에서 독을 완전히 몰아내고 나면, 아쉬워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보입니다. 사람들은 술을 끊으면 마치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처럼 애도의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쪽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진실입니다. 안쓰러워해야 할 대상은 그들입니다.

이것은 평생의 성공을 위한 핵심 중 하나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사실 간절히 벗어나고 싶은 덫에 걸려 있습니다. 저는 술을 끊은 뒤, 술을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 저를 부러워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술에 의존하지 않고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데 따르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막는 것은 두려움뿐입니다. 술을 끊는 데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저 역시 수년 동안 똑같은 두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정말로 더는 술을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이 어떻게 그 이야기를 좀처럼 끝내려 하지 않는지 눈여겨보십시오. 저녁 시간이 다 끝났을 때 그들이 술을 마셔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늘 자신은 통제하고 있다고 말하는지, 술이 얼마나 조금밖에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지,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을 왜 마시는지 얼마나 끊임없이 정당화하려 하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여러분처럼 끔찍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약물 중독자는 거짓말을 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요.

여러분이 더는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여러분이 초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스스로도 초인이 된 기분이 듭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적어도 조금은 불평하리라고 예상할 테니까요. 술과의 싸움은 평생 계속되며 그 병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이어 가는 것은, 술을 끊고도 징징거리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진실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여러분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이것은 잔꾀가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음주자 대부분은 속으로 여러분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속으로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통제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바로 드러날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최대한 오래 그 연기를 이어 가며 거듭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난 통제하고 있어요. 나한테는 아무 문제 없어요.’ 하도 자주 말하다 보니 스스로도 믿기 시작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진정한 통제란 더는 통제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상태입니다.

혼자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약물 중독자는 없습니다. 혼자라고 해서 홀로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이 정말 혼자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같이 한잔할래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술을 마시게 하려고 무슨 말이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다시 자기들과 함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여러분을 중독에 빠뜨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할 것입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러분에게 그 약물을 팔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병을 안겨 주고 싶어 하는 악의적인 사람들이어서가 아닙니다. 그 환상을 실제로 믿으며, 그것이 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중독에 빠뜨립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십시오.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는 사람보다 여러분에게 그 환상을 더 잘 팔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이 중독에서 가장 슬픈 점입니다. 사람들은 술에서 진짜 즐거움을 얻고 있으며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 밖의 시간에 마시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도록 배워 왔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저는 약물을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는 점을 이미 보여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