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 즐거운 효과

아, 그렇죠. 술의 놀랍고 즐거운 효과 말입니다. 알코올이 뇌에 일으키는 그 꽤 묘한 느낌이죠. 하지만 그 묘한 느낌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며, 정말 우리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 주나요? 애초에 ‘그’ 느낌을 우리가 정말로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있기는 한가요?

자신이 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 일을 정당화하려고 온갖 이유를 만들어 냅니다. 그 말을 충분히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믿게 되고, 자신이 하는 말이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헤로인 중독자들은 자신을 좀비처럼 만들고 정신을 멍하게 하는 강력한 독을 주사하는 것이 즐겁다고 믿습니다. ‘그’ 놀라운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삶이 파괴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 역시 자신을 좀비처럼 만들고 정신을 멍하게 하는 독을 마시는 것이 즐겁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놀라운 즐거움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삶의 파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술에 관한 가장 큰 환상은 술이 우리를 정말로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술 마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제가 그저 아주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술은 여러분이 진정한 즐거움을 얻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헤로인 중독자는 팔에 바늘을 꽂아 정맥을 헤로인으로 채울 때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즐기는 것은 약물 자체가 만들어 낸 끔찍한 저조함에서 벗어나는 안도감뿐입니다. 가엾은 헤로인 중독자는 그 침울한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싸우며, 약물을 복용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 이들이 계속 헤로인을 복용하는 유일한 이유는 헤로인을 복용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같은 기분을 느껴 보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통제하려는 대상이 사실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제하려고 애쓸수록 통제력을 더 잃고, 통제력을 더 잃을수록 그것을 되찾으려고 더 애씁니다. 몸은 어떤 약물에든 늘 면역과 내성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생존 기제입니다. 그래서 약물을 많이 복용할수록 얻는 안도감은 줄어들고, 안도감이 줄어들수록 더 많은 약물이 필요해집니다.

많은 헤로인 중독자는 금단을 겪고 난 뒤에도 흔히 다시 약물로 돌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씩 끊고도 여전히 하루하루 버티며 지냅니다. 이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자신은 결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지만, 오늘 하루는 참고 있다고 말합니다. 슬픈 진실은 이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즐거움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포기했다’고 믿기 때문에 계속해서 정신적인 박탈감을 느낍니다.

술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술을 끊고도 여전히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은 AA의 철학에 따라 술의 놀라운 즐거움을 참으려고 애쓰며 하루하루 버팁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들 역시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무 소용도 없이 정신적인 박탈감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희생을 했다고 여전히 믿는 한, 이들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공허함을 느낄 것이고, 그 때문에 술이 그 빈자리를 채워 준다는 믿음은 더욱 확고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그 공허함과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실제로 만들어 낸 것은 이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술을 끊으면 사실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우리에게 술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필요는 그 후에 생겨났습니다. 어릴 때 파티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즐겁게 지내는 데 술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없으면 크리스마스나 제 생일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워한 적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제 생일에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공황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리라고는, 술 없이 새해를 축하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혼비백산하리라고는, 주말에 나가서 술을 마시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참해지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무기력하고 지쳐서 즐거움을 얻는 주된 원천이 술병이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약물에 의존하게 되리라고는, 자신감이 너무나 산산이 부서져 술 한 잔 없이는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제가 눈앞의 어른들처럼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 갔다고 해 봅시다. 아이들이 술을 좀 마시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정말로 생각하나요? 아이가 울고 있으면 기분을 풀어 주려고 술을 주겠어요? 아이가 웃고 있으면 더 행복해지라고 술을 주겠어요?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이에게 술을 주면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물론 그러지 않을 겁니다. 술이 아이를 편안하게 해 주거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정신을 멍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테니까요. 아이가 그렇게 멍해진 상태를 즐길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 상태의 아이는 더 이상 본래의 자신이 아닙니다. 알코올이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므로 더 이상 어떤 진정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의 몸이라는 놀라운 기계가 이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겁니다. 알코올이 뇌에 이르면 우리의 타고난 감각을 빼앗아, 우리를 무방비하고 취약한 상태로 만듭니다. 아이의 생일에 술을 준다면, 아이는 진정한 즐거움을 조금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생일 자체를 놓쳐 버릴 겁니다. 알코올이 그 경험을 영원히 빼앗아 버리는 거죠. 자신의 진정한 감정에 다가갈 수 없는데 어떻게 어떤 감정이든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술 없이도 즐겁게 노는데 우리는 왜 술이 필요하다고 느낄까요? 왜 술 없이는 더 이상 삶이 온전할 수 없을 것처럼 느낄까요? 왜 술을 끊으면 뭔가 빠진 듯할 거라고 느낄까요? 우리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바로 술 자체 때문입니다. 알코올이 우리의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기 전에도 온전했습니다. 우리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 것은 오직 그 약물 자체입니다. 이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공허함을 느끼며, 애초에 그 공허함을 만들어 낸 바로 그것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는 뜻입니다. 술 없이는 자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계속 믿는 한, 술을 끊더라도 결코 진정으로 온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겁니다.

알코올은 사람의 기분을 띄워 주는 것처럼 보이는 억제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술기운이 도는’ 사람에게뿐이지, 맨정신인 사람에게는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술을 마시는 사람의 인식뿐이지,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의 인식이 아닙니다. 제가 맨정신으로 취한 사람과 대화하려고 했을 때, 그 사람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게 보였으니까요. 그저 정신이 멍해진 상태였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고, 그게 본래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뚜렷이 보여서 말을 걸 가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술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도록 속아 넘어갔으면서도, 제게만큼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한잔하면 기분이 좋아졌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알코올이 뇌에 들어오면 인식이 달라집니다. 거짓된 쾌감과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실제로 자신이 더 행복해졌다고 믿는 겁니다. 다른 중독자들과 함께 있으면 모두 같은 느낌을 경험하고 있으니 그것이 정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그 느낌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정말로 즐기기는 할까요? 술 한 잔에서 어떤 진정한 즐거움을 얻나요? 그것을 팔아야 한다면 팔 수 있을까요?

처음 취했던 경험이 기억납니다. 열 살쯤이었고 와인을 조금 마셨습니다. 기분이 끔찍했습니다. 방이 빙빙 돌았고, 메스꺼워서 토했습니다. 제 몸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증기 롤러에 깔리기라도 한 듯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서 그 느낌이 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약물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제가 자신을 속이려고 지어낸 수많은 거짓말과 함께 제 인식만 달라졌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제 몸에 그 약물에 대한 면역과 내성이 생겨, 그런 상태에 이르려면 훨씬 더 많은 술이 필요해졌다는 겁니다. 점심때 마신 처음 몇 잔은 그저 전날 밤 마신 술 때문에 아침 내내 겪었던 저조한 상태를 메워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아시겠지만,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는 한 잔만 마셔도 나가떨어지지만, 점차 점점 더 많이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나가떨어지려면 훨씬 더 많이 마셔야 합니다. 알코올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독에 대한 몸의 내성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성이 너무 커져서 술을 마시는 중에도 여전히 한잔하고 싶어 합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술이 더 필요해지고, 더 필요해질수록 더 많이 마시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은 몸이 알코올의 신체적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 72~240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 약물 때문에 저조해진 상태에서 회복하는 데 최대 열흘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금단이라고 부릅니다. 중독자는 이렇게 저조한 상태에 익숙해져 그것을 정상으로 여기므로, 대부분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자신의 내성 수준을 넘어서 마시면 숙취를 일으키는 그 저조한 상태를 더 뚜렷이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몸에는 그 약물에 대한 내성이 더욱 커지는데, 평소의 내성 수준을 넘길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얼마 후에는 그 저조한 상태가 끝나는 것을 진짜 고양감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는 꽉 끼는 스키 부츠를 신고 이틀쯤 지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단지 다시 벗을 때의 즐거움을 맛보겠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알코올은 두 가지 방식으로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는 신체적으로 저조한 상태를 부분적으로 끝내 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 상태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진짜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그’ 느낌을 얻으려고 술을 마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느낌은 뇌의 합선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을 ‘머리가 붕 뜨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그 감각을 즐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지러운 느낌과 똑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제자리에서 빙빙 돌아 보세요. 돈을 엄청나게 아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빙빙 돈 다음 똑바로 걸으려 하면 넘어질 테니, 그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저는 어지러워지려고 술을 마신 적이 없습니다. 헤로인 중독자가 주사를 놓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마셨습니다. 그 약물 없이는 즐길 수도, 버텨 낼 수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술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얻고 있으며 제 선택으로 술을 마신다고 믿었으므로,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사실 저는 술을 마시기로 선택한 적이 없었고, 술을 마셔서 진정한 즐거움을 얻은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더 많이 웃는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일곱 살 때 핼리팩스에 살면서 어울리던 또래 아이들은 접착제를 흡입한 탓에 늘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접착제를 흡입할 타당한 이유가 될까요? 그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그 멍청한 표정이 접착제를 흡입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정말로 더 행복하다는 뜻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술을 마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