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쉽게 끊을 수 있다
술은 쉽게 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끊는 과정도 즐겁고, 계속 마시지 않고 지내는 것 역시 쉽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술을 끊고 계속 마시지 않는 일이 얼마나 쉬울 수 있는지 보여 드리는 것이지요. 의지력이나 자기 단속, 괴로움이나 박탈감 없이도 해낼 수 있습니다. 사실 술을 끊는 것은 언제나 쉬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믿도록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술을 끊으려고 할 때 겪었던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한 탓에, 끊는 일이 어렵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회는 알코올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일이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이 완전히 끊기보다 마시는 양을 줄이거나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자유로워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믿도록 조건화되어 있다면, 감옥에서 탈출하려 애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다음으로 나은 길은 감옥 생활을 어떻게든 좀 더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수년에 걸쳐 몇 번이나 술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글쎄요, 끊는다고 했지만 아마 줄인다는 뜻이겠지요. 정말로 영원히 끊는다는 생각은 제게 극심한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저는 중독되지 않았고 제가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종종 잠시 금주했지만, 사실 그것은 제가 중독되었다는 사실만 증명한 셈이 아닐까요? 예전에 한 달 동안 술을 끊는 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술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이며, 술 마시는 것이 분명히 그리워질 테고, 끊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따금 한 달씩 술을 끊으라고 권합니다. 통제한다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한 달 동안 술을 끊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을 막 샀는데, 그 자체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통제하고 있고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이라면 그냥 끊으면 됩니다. 책의 도움까지 필요하지는 않겠지요?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술을 쉽게 끊을 수 있다는 것뿐 아니라, 제가 영원히 끊을 생각을 하고 그 과정을 즐기며 다시는 술을 그리워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결코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고, 이제 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속아 왔는지 세상에 똑똑히 보여 주고 싶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도 자유를 찾고 진정한 통제력을 얻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신이 알코올의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딘가 ‘정상적인’ 음주자와 다르며 통제력을 잃었다고 믿게 됩니다. 곧바로 ‘알코올 중독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우리는 알코올 중독증이라는 병을 타고났으며 결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배웁니다. 그렇다면 술을 끊을 때 기뻐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엾은 음주자의 마음속에는 기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몹시 비참해할 일이 있습니다. 평생 박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전망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술을 끊으려 했던 경험뿐 아니라 사회에 의해서도, 술을 끊고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조건화됩니다. 재활 클리닉에 들어가 몇 달 동안 술을 끊고도 여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반가운 진실은 술을 끊고도 그리워하지 않는 일이 쉽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리워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입니다. 사회뿐 아니라 약물 자체가 만들어 내는 교묘한 환상에 의해서도 우리는 그것을 믿도록 조건화되어 왔습니다.
왜 술을 끊기가 어려울까요?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실 무언가를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열기구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100미터를 10초 안에 달려야 한다면 최고의 몸 상태에 이르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그렇게 하더라도 신체적으로 달성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술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술을 끊고 싶은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왜 그토록 끊기 어려워할까요? 술이 파괴적이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여전히 어떤 진정한 즐거움이나 의지할 버팀목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점이 장점보다 크다는 것을 아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런데도 술을 마시는 데 이점이 있다고 여전히 믿습니다. 음주자가 계속 이렇게 믿는 한 술을 끊기가 언제나 몹시 어렵거나, 끊은 뒤에도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제가 석 달 동안 금주했을 때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도 이것입니다.
환상이 걷히고 자신이 기막히게 교묘한 덫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제야 마침내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술을 마시는 데는 그 어떤 이점도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오직 그때에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합니다. 환상과 수년간의 세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자신이 실제로 무언가를 희생했다고 계속 믿는다면,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결코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덫에서든 벗어나려면 자신이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만, 벗어난 뒤에는 자신이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음주자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술이 필요 없다는 데 안도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술을 끊는 일이 계속 ‘진행 중인 과제’로 남아 있으니, 언제나 술을 끊는 과정에 있는 셈입니다.
여러 해 전, 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선수 폴 머슨이 텔레비전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터뷰는 대부분 그의 음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고 밝힌 뒤 폴이 이루어 낸 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존경받을 만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그가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그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 정도만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여전히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술을 끊을 날을 기대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폴은 4년 넘게 애쓰다가 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그 4년 동안 그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밖에 나가 즐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은 다르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르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는 4년 동안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에 비참함과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굴복한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 폴이 술을 마시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가 이 책을 읽었거나 다른 길을 찾아 이제 마침내 자유로워졌기를 바랄 뿐입니다. 알코올의 덫은 아주 단순하며, 제게 남은 질문은 하나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내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술은 쉽게 끊을 수 있고, 남은 평생 자유롭게 지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세뇌와 조건화를 없애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우리 중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른바 알코올 중독 전문가들이 하는 조언 중 일부는 술을 끊기가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을 지속시킵니다. 몇 달 동안 고통을 겪어야 하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그들은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루빅스 큐브도 해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마찬가지입니다.
Drinkline의 예전 안내 책자 중 하나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술을 끊는 일을 견뎌 내는 데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전략. ‘견뎌 내다’라는 말 자체가 이미 술을 끊는 것이 어렵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다시 한번, 결코 자유로워질 수는 없고 그저 술을 끊은 상태를 받아들이거나 ‘견뎌 낼’ 수 있을 뿐이라고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을 방해할 ‘효과적인 전략’ 목록을 제시합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도움을 준다는 말이었지요! 그중 한 가지 전략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술을 끊고 싶은 이유를 모두 적어 보세요
이 전략이 사람들이 술을 끊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이미 설명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도움이 되어야 하겠지만, 알코올 중독에 관한 것 중 논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대개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음주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압박에 시달리면 술에 손을 뻗습니다. 그러니 마시면 안 되는 이유를 모두 적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입니다. 보통은 그 목록을 만들기 전보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더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알코올 중독자가 가장 먼저 할 법한 일은 무엇일까요? 물론 어차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 보려고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마시면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시고 싶은 이유 때문에 마십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전문가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이 조언이 술을 끊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이 안내 책자에 나온 다른 ‘도움이 되는’ 전략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상에 변화를 주세요. 예를 들어 직장이나 상점에 갈 때 펍과 주류 판매점을 피하는 다른 길을 택해 보세요
다시 말해 유혹을 없애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논리적인 조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사무실이나 상점에 가는 길에 어떻게든 영국의 펍과 주류 판매점 200,000곳을 피해 다니고, 술을 파는 곳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혹에 노출될 테니까요. 아마 텔레비전도 보지 말고 라디오도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도 술 광고가 자주 나오니까요. 광고는 언제나 술을 즐겁고 멋진 것으로 보여 주므로, 보거나 들으면 유혹을 느낄 수 있고, 그러면 또 그들의 전략을 따르지 못하는 셈입니다. 다른 음주자들과 함께 있다가 술의 유혹을 느낄 수 있으니, 아예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있을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다시는 밥도 먹지 말아야 할까요? 생각해 보세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은데 어떻게 유혹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점심때마다, 끼니마다, 저녁마다, 날마다 술을 마시던 때에는 유혹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유혹을 느끼지 않으려면 잠에서 깨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술 마시는 꿈을 꿀지 모릅니다. 사실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다면, 어디로 걸어가든 어디에서 걸어오든 유혹을 느낄 것입니다.
긴장을 푸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세요
긴장을 푸는 다른 방법이라고요? 이것도 알코올이 실제로 긴장을 풀어 준다고 암시하는 세뇌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세뇌는 뒤에서 깨뜨릴 것입니다. 반가운 진실은 긴장을 푸는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되면 훨씬 더 편안해질 테니까요. 애초에 여러분이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알코올입니다. 이 점은 나중에 보여 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즐기던 취미와 활동을 다시 시작하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보세요
예전에 즐기던 것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니, 술잔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꺼내야 할 모양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그러기는 몹시 어렵겠지요. 이 조언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처럼 술을 마실 때 하던 것들을 더 이상 똑같이 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을 지속시킵니다. 이것이 헛소리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무알코올 음료를 마셔 보세요. 마음에 들지도 모르잖아요!
아, 정말이지. 건설적인 말을 할 게 없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우리가 어린애인 줄 아는 걸까요? 사실 여러분이라면 자기 아이에게도 이렇게 뻔한 말을 할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저는 수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왔는데, 알코올이 든 음료 대신 청량음료를 마시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단 말입니까? 왜 저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사교 모임 장소에서 음료를 마실 때는 다트나 빙고를 하거나 춤을 추는 등 무언가를 해 보세요
이건 우리를 놀리려고 하는 소리일까요? 다트를 하라고요? 물론 다트가 술을 끊거나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넘쳐 납니다. 정상급 다트 선수 몇몇의 배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미리 준비하세요. 술을 권할 때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네, 제대로 읽으셨습니다. 사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거울 앞에 서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말하면 되는지 예시까지 제시합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다음에 마실게요.’ ‘고맙지만 괜찮아요. 운전해야 해서요.’ ‘지금은 안 마실게요.’ 그러고 있으면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이 느껴질지 상상이 되십니까? 친구와 함께 연습하라고도 권합니다! 친구라고요? 그런 짓을 하기 시작하면 친구가 하나도 안 남을 겁니다!
‘하루하루를 하나씩 살아가세요’
우선 그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제안입니다. ‘하루하루를 오는 대로 받아들이라’니, 달리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우리는 하루씩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평생 술 없이 하루하루 버티며 매일 온종일 싸워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준다는 점입니다. 20년 넘게 AA 모임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일어나 ‘저는 앨버트입니다. 저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일 수 있습니까? 저는 늘 ‘알코올 중독자’라면 상습적으로 과음하거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술을 마시거나, 술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폴 머슨은 그 인터뷰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평생 싸우고 고통받아야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암울한 앞날입니까. 고통받는다고요? 싸운다고요? 무엇과 말입니까? 저도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술을 마실 때의 일이지, 지금은 아닙니다. 자유로워지고 나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더 이상 술을 통제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마시는 양을 제한하려고 의지력이나 자제력을 동원하거나, 술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술을 끊을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날짜를 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날마다 자신이 실패하는지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으며 언제까지나 싸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조건화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술 끊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술을 마시는 사람도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건 쉽습니다. 사실 그들도 술을 멈추는 게 쉽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잔을 다 마실 때마다 실제로 술 마시기를 멈추니까요. 문제는 그다음 잔, 또 그다음 잔, 그리고 그 뒤로 수천 잔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 잔을 집어 들지 않는 데 있습니다.
제가 Drinkline이나 AA 같은 단체들에 가장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은, 그들이 술을 끊는 것을 진짜 희생으로 여기게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진정한 즐거움이나 의지할 것을 놓치게 되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니 다시는 ‘정상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폴 머슨은 그 인터뷰에서 샴페인으로 가득 채운 FA컵 우승 트로피가 사람들 손을 거쳐 자신에게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폴은 멋쩍게 ‘그냥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레모네이드를 마시겠죠’라고 답했습니다. 이 질문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상했습니다. 첫째,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 샴페인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건 이상해 보입니다.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권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기를 기대했던 걸까요? 제 생각에는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우승컵을 차지한 기쁨을 계속 만끽했을 것 같습니다. 그 질문이 부적절했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진짜 질문은 ‘FA컵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나 ‘우승컵을 차지하면 어떤 기분일까요?’였어야 합니다. 대체 왜 거기에 술 이야기가 끼어드는 걸까요? 그의 삶에서 술을 마시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할 법합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시는 손대지 않기를 바라는 무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끊은 지 4년이 넘었으니 몸에는 그 약물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술을 끊고 나서도 여전히 고통받습니다. 몇 년 동안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술이 마시고 싶어 죽을 지경이고 비참한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체적 중독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을 열고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해 보세요. 우리는 문제가 신체적 중독에 있다고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술을 마시는 사람이 6주 동안 ‘몸에서 술을 빼기’ 위해 치료 시설에 들어갔다 나오면, 체내에는 알코올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몸에서 술을 빼는 끔찍한 과정을 겪은 사람들은 대개 퇴소한 뒤 첫 일주일 안에 다시 술을 마십니다. 제가 석 달 동안 술을 끊었을 때는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 즉 갈망이 더 심해졌습니다. 알코올이라는 약물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 신체적 중독이었다면, 저는 불과 며칠 만에 자유로워졌을 것입니다. 알코올은 몸에서 아주 빠르게 빠져나갑니다. 알코올은 강력한 독이며 몸이 그것을 저장한다면 우리가 죽게 되므로,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실제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면 알코올의 흔적은 모두 사라집니다. 다르게 믿도록 조건화된 분들을 위해 이 의학적 사실을 다시 말하겠습니다. 중독자가 마지막 잔을 마신 뒤 7일에서 10일 안에 체내의 알코올 흔적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니 왜 몸에서 술을 빼는 데 6주나 필요하다는 건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술을 멀리하도록 돕기 위해 처방하는 디설피람 같은 약물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아실지도 모릅니다. 디설피람을 복용한 상태에서 술을 아주 조금만 마셔도 몸이 몹시 아플 수 있습니다. 이 약은 (듣자 하니) 술에 대한 갈망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복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어떤 약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약물을 복용한다는 게 대체 조금이라도 말이 됩니까? 헤로인의 경우에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중독자들이 헤로인을 끊도록 돕는 데 쓰이는 오피오이드계 약물인 메타돈은 헤로인 자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중독을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없애지 않은 채 그저 다른 곳으로 옮길 뿐입니다.
이런 접근법이 사람들이 술을 끊는 데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디설피람을 복용하고 술을 마시면 급성으로 심하게 아플 수 있다는 경고를 받습니다. 급성으로 심하게 아프다고요? 여러분이 술에 중독되어 있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자, 이 약을 드세요. 이걸 복용한 뒤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마시면 몸이 아플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술을 끊는 게 아니라 디설피람 복용을 중단할 것입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급성이든 아니든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술을 멀리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 대부분은 적어도 한 번쯤 지독한 숙취를 겪어 봤습니다. 그렇다고 술을 끊나요? 갈망이 사라질 때까지 약물을 계속 복용하라는 조언은 또 어떻습니까? 대체 얼마나 오래 이 약을 복용하라는 걸까요? 그들 말대로라면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답은 영원히일 수밖에 없습니다. 갈망은 신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술을 전혀 마실 수 없게 만드는 약물을 몸에 넣는다면 술을 훨씬 더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갈망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중독자가 마음속에서 그 약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있습니다. 저는 술을 끊고 지내는 동안 신체적으로 고통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느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받았습니다. 비참했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하게 된 아이처럼 잔뜩 떼를 쓰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겪는 고통은 정신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알코올 중독자나 아침부터 밤까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금단 증상도 겪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혈당 수치가 너무 엉망이고 몸에 영양분이 너무 부족해서, 이 액체 약물의 공급이 갑자기 끊기면 정말로 신체적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가장 심한 경우에도 갓 짜낸 맛있는 생즙과 슈퍼프루트 스무디를 마시면 혈당과 영양분을 쉽게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이렇다 할 금단 증상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신체적 금단 증상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는 건가요? 실제로 따져 보면 대체 무엇입니까? 숙취인가요? 그건 얼마나 오래가나요? 이틀 정도 두통이 생기는 건가요? 우리 모두 그 정도는 겪을 만큼 겪었고, 또 모두 이겨 냈습니다. 그 소중한 감로주 때문에 집과 일자리와 가족까지 잃는 지경에 이른 사람이 숙취가 두려워 그 모든 가슴 아픈 일을 견뎠을 리는 없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대개 두려워하는 것은 술 없이는 예전처럼 삶을 즐기거나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을 계속 중독 상태에 붙잡아 두는 것은 약물 자체가 만들어 내는 환상과 수년간의 조건화와 세뇌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이 정보를 나누는 일이 이토록 설렙니다. 바로 이것이 이 방식으로 술을 끊는 일을 그토록 쉽고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술이 자신에게 해 준다고 세뇌되어 믿게 된 것에 중독되어 있을 뿐입니다. 알코올의 화학적 작용은 이 모든 세뇌가 옳다는 증거처럼 보이는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뇌를 걷어 내는 것뿐이며, 그러면 중독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몇 년 동안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어려움을 겪었다면, 이 단계에서 제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에 무조건 전부 동의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회의적인 태도로 의문을 품기를 바랍니다. 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사회가 여러분에게 믿도록 만든 것에도 의문을 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분들 중에는 술을 끊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어쩌면 자신은 중독되지 않았다고 믿는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이 책은 알코올이라는 약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여러분의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니 중독이 90퍼센트 넘게 심리적인 것이고 신체적인 부분은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면, 자유로워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세뇌를 걷어 내고 첫 일주일 정도 살아 있는 영양소가 몸속에 공급되도록 하여 중독에서 비롯된 ‘숙취’를 해소하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살아 있는 영양소에 관한 정보는 제 웹사이트 www.juicemaster.com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왜 술을 마시면 안 되는지가 아닙니다. 그건 이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진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