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운으로 내는 용기
두려움을 이겨 내지 않고는 용감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술이 진정한 용기나 자신감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정반대의 일을 한다고 단언합니다. 알코올은 여러분의 용기와 자신감을 파괴하며, 이것이 이 사기극 전체에서 가장 해로운 부분입니다. 자유로워졌을 때 얻는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그 진정한 자신감과 용기를 되찾는 것입니다.
키는 겨우 5피트이고 케이트 모스처럼 가냘픈 사람이 술을 마신 뒤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덤비는 모습을 보면, 누가 단 한순간이라도 그 사람이 진정으로 용감하다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중독된 당사자만 빼고 모두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알코올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없애서 거짓된 자신감과 용기를 느끼게 합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용감할 수도 없습니다. 용기 있는 행동은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진정한 용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톰이 술을 마신 뒤 웨이터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보면, 나중에 감탄하며 ‘톰이 저렇게 자신감 있는 사람인 줄 몰랐어’라고 하나요? 아니면 거듭 사과하며 ‘톰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술이 시키는 말이에요’라고 하고 싶나요?
사실 밖에서 보는 사람은 절대 속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독된 사람, 이 경우에는 톰이 속습니다. 톰은 잠에서 깨어나서도 여전히 전날 밤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진짜였다고 속아 믿습니다. 그러니 톰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얻는 쉬운 방법은 다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 가짜라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독된 당사자가 진짜라고 믿는 한 해로울 것이 없으니, 그 느낌이 가짜인지가 과연 중요하냐고 묻습니다. 해롭습니다.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없애서 거짓된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 데에는 엄청난 해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없애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 온갖 위험에 취약해집니다. 가장 강력한 생존 장치를 꺼 버리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반응하려면 모든 감각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문이 쾅 닫히면 우리는 화들짝 놀랍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놀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술로 긴장을 풀고 있는 사람은 감각이 무뎌져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흔히 ‘데이트 강간’ 약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약물은 표적이 된 피해자를 좀비 같은 상태로 만들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합니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도록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주변의 위험에 귀도 먹고 눈도 먼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스스로를 놓게 됩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본능이 모두 존재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남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들을 없애면 투쟁 또는 도피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을 활용할 능력을 잃고,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 됩니다.
막 싸우려는 십 대 두 명은 자신이 용감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동시에 누군가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말려 주기를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대개 한 명이 쓰러지는 순간 다른 한 명은 멈추고, 그 사람이 ‘승자’로 여겨집니다. 보통은 심해 봐야 한 명이나 두 명이 코피를 흘리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술을 주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자신이 다치는 일을 막아 주는 자연스러운 보호 장치가 사라집니다. 의식을 잃고 피를 쏟고 있는데도 얼굴을 거듭 발로 차이는 모습을 보게 되는 때는 사람들이 약물에 ‘취해’ 있을 때뿐일 것입니다. 가장 끔찍한 폭력은 대개 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발길질하는 사람들은 용감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사라져 통제력을 잃은 것입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도 정신이 온전하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면 아마 애초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젊은 여성이 나이트클럽에서 혼자 걸어 돌아올 때는 조금 긴장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알코올은 그런 두려움을 없애고 그 자리를 거짓된 자신감으로 채웁니다. 이런 때는 거짓이든 진짜든 자신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위험을 경계하게 해 줄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 거짓된 용기에서 제가 가장 해롭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중독된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진짜라고 믿는다는 점입니다. 알코올은 줄곧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며, 중독된 사람이 믿는 것과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중독된 사람이 ‘술의 영향 아래’ 있는 동안 알코올은 거짓된 용기나 자신감을 줄 뿐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용기와 자신감도 작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진정한 용기와 자신감이 너무나 억눌린 나머지, 결국 술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 술을 ‘보충’하지 않고는 자신감이 전혀 없다고 굳게 믿게 됩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자는 자신의 ‘요, 요,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그는 용기를 되찾습니다. 사실 사자에게는 언제나 용기가 있었습니다. 용기를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오랫동안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는 용기가 전혀 없다고 더 굳게 믿었습니다. 그 때문에 점점 더 겁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그 믿음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어떻게 용기를 찾았을까요? 술 한 잔을 마셔서요? 아닙니다. 물론 아니지요. 그 영화를 본 사람 중 사자가 술을 마시면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백만 명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없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용기를 쓰는 바로 그 순간 용기를 찾았습니다.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느꼈을 때 그것을 뚫고 나아가 자신의 진정한 용기를 다시 발견한 것입니다. 술을 마셨다면 아주 거짓된 자신감을 느꼈을 뿐, 진정한 용기는 결코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찾았다고 믿는 것을 왜 찾으려 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이 자신감과 용기를 얻도록 도와준다고 굳게 믿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렇게 믿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약물 없이는 살 수 없을까 봐 더욱 두려워집니다. 저는 예전에 술 없이 살려면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을까요? 삶을 즐기거나 감당하기 위해 헤로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자신감 있거나 용감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LSD나 크랙이 필요 없이 산다고 해서 제가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에게는 약물 없는 삶이 결코 지금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약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감 있는 사람들이어서 자신을 떠받쳐 줄 것이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성격이나 유전적 구성을 탓하지만, 실제로 진정한 자신을 억누르는 것은 약물 자체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몇 번이고 되풀이하겠지만, 약물이 약물에 대한 필요를 만들어 냅니다.
저는 술을 끊는 것처럼 간단한 일조차 할 용기가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사실 제게는 늘 용기가 있었지만, 사자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무엇이 저를 가로막고 있었을까요? 약물 자체가 만들어 낸 두려움, 그리고 약물을 오래 섭취할수록 두려움이 더 커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그 두려움을 이겨 내려고 술을 더 많이 마셨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알코올입니다.
아이들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자신의 진짜 용기로 그 두려움을 이겨 냅니다. 생일 파티에 간 아이들을 보세요. 노래하고 춤추고 뛰어놀면서도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즐겁게 놀고 있으니까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그런 일조차 두려워합니다. 즐기려면 먼저 술을 한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할 때마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성장합니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알코올 중독의 가장 슬픈 부분입니다. 술에 의존할수록 술 없이는 대처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는 확신이 강해지고, 내면은 더 빨리 죽어 갑니다. 그러면 삶에서 느끼는 충만감은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술에 더욱 의지합니다. 제가 술을 끊기를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제 삶에 영원히 메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길 거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만드는 것은 술이며, 술을 없애면 그 자리가 채워집니다. 이제 그 빈자리가 채워지고 나니, 다시 술을 마신다는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두려운 게 아니라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왜 두려워해야 할까요?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술은 여러분의 용기와 자신감을 파괴합니다. 친구들과 식사하는 데 무슨 자신감이나 용기가 필요한가요? 해변에 누워 있거나, 파티를 즐기거나, 이미 잘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데 무슨 용기가 필요한가요? 이런 자리에서 도대체 왜 불안해야 하나요? 축구 경기를 보거나, 결혼식이나 세례식에 가거나,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잠에서 깨는 데 대체 무슨 자신감이 필요한가요? 이 구덩이의 맨 밑바닥, 흔히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이미 내려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아침에 술 한잔을 마시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술이 이들이 또 하루를 버티도록 도와주는 걸까요? 아니면 그 약물 자체가 이들의 진정한 자신감을 너무 깊이 묻어 버린 나머지, 이제는 자신감이 오직 술병 속에만 있다고 믿게 된 걸까요?
‘하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니까 절대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을 거예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유사에 빠져 있습니다. 거짓을 진실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술을 마신다고 자신감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랬듯이 서서히 시들어 갈 것입니다. 이 일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이 과정은 대개 너무나 점진적이어서, 여러분은 그 원인을 직장이나 가족, 생활 방식 같은 온갖 다른 것에서 찾게 됩니다. 저는 미리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어떤 사교 모임에도 가지 못하고, 어떤 스트레스에도 대처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저의 진정한 자신감은 억눌려 있었습니다. 술 없이 즐기는 법을 도무지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제가 비참하며, 술을 마시면 더 행복해진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술을 마시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예전 어느 때보다 자주 밖에 나가고, 성인이 된 뒤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치기에 이 모든 것이 아주 분명하게 보입니다.
저는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곤 했습니다. 마시는 양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며,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시는 양을 끊임없이 살펴야 했기에, 음주를 통제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통제가 아닙니다. 노예 생활이며 의존입니다. 무엇이든 의존하게 되면 그것은 여러분이라는 사람을 서서히 파괴합니다. 여러분을 지치게 하고 나락으로 끌어내립니다. 술은 바로 이렇게 여러분의 용기와 자신감을 실제로 파괴합니다.
실제로는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무언가를 통제하려고 애쓰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듭니다. 특히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뿐이라고 믿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며, 스스로 선택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고, 가끔 조금 많이 마실 수는 있지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나요? 가장 큰 문제는 실제로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무언가를 통제하려고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실제로는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때입니다. 말 자체가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을 대단한 성취로 여기며 자랑한다면, 그 사람은 통제력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들은 2주 정도 술을 끊는 데 성공한 사람에게 축하를 해 줄까요? 특히 술을 마시는 데서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무언가를 일주일 동안 하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요? 정말 통제하고 있다면 왜 자랑하겠어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도 일주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적게 마시는지 내세우며 음주를 정당화하다가도, 누구와 마셔도 상대가 먼저 나가떨어질 만큼 마실 수 있다고 자랑하는 소리는 늘 들립니다. 일주일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로 기쁘고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면, 명백한 사실은 그 약물이 여러분을 통제하고 있으며 여러분에게 주도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중독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술을 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한 달 동안 술 끊는 법이라는 책까지 있습니다. 그 책은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해마다 한 달씩 술을 끊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또 그렇게 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고, 내내 술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 며칠째인지 알 수 있도록 하루하루 기록하는 계획표까지 권합니다.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술을 끊고, 날짜를 세고, 내내 술을 그리워하면 자신에게 술 문제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건 자신에게 정말 문제가 있으며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두려워하던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지 않을까요? 그러면 여러분의 진정한 자신감은 어떻게 될까요? 이 덫과 관련된 모든 것이 그렇듯, 산산조각이 납니다. 잠시 생각해 보세요. 정말 통제하고 있다면 애초에 그런 책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끊으면 되니까요. 제가 바나나를 먹지 않기로 했다면서, 제 말을 들어 주는 사람마다 붙잡고 몇 주째 바나나를 안 먹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동시에 ‘한 달 동안 바나나 끊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면, 제게 정말 바나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않겠어요? 그뿐 아니라 제가 즉시 도움을 받도록 반드시 조치할 것입니다!
약물이 여러분의 자신감을 점점 더 억누를수록, 술을 마시고 다음에 또 마실 때까지 그 사이를 통제하던 능력도 줄어듭니다. 모든 약물 중독이 그렇듯, 그것이 여러분을 더 깊이 끌어내릴수록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즐거움이나 버팀목이라는 믿음에 더욱 속아 넘어가고, 더 크게 의존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술을 끊는 과정 전체는 쉽고 즐겁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끊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오직 영원히 술을 끊는 데 대한 두려움과 평생 무언가를 놓치며 살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두려움 자체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감정이니까요. 술을 끊는 사람들이 단 2주 정도만 끊어도 몹시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신체적 금단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이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고 스스로 학습했으며 사회로부터 그렇게 세뇌당했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빼앗겼다는 느낌이 강할수록 스트레스가 커지고,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술을 더 갈망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정신적 갈망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분이 세뇌당해 믿게 된 내용이나 지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술은 진짜로 다음을 풀어 줄 능력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