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하는 사람들

아, 그렇지요. 폭음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은 국가에 £2.7 billion의 비용을 떠안기고 영국에 ‘폭음의 나라 영국’이라는 별명이 붙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중에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제약 때문에 주말에만 폭음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음주자 대부분은 주말에 음주량이 세 배로 늘어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몇 달 동안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다가 폭음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은 대개 뚜렷이 구분되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1. 술에 어떤 이점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마시지 않을 때도 정말로 술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2. 마시지 않을 때 정말로 술을 아쉬워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저 ‘잠시 금주 중’인 사람들입니다.

두 부류 모두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제대로 마십니다. 세상의 온갖 제약을 다 갖다 놓아도 이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술을 마셔야 하고, 적당히 마시는 법은 없습니다. 그저 계속 버튼을 눌러댈 뿐, 결과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닙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정말로 술이 전혀 아쉽지 않은 첫 번째 부류는 술에서 벗어나 있는 동안에는 실제로 술의 실체를 볼 수 있고, 그런 것을 마시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도 한 가지 환상을 믿는다는 점입니다. 술이 스트레스를 덜어 준다는 환상이지요. 현실이 너무 버거워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이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폭음을 합니다. 그러니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하든지, 아니면 진탕 마시든지 하는 겁니다. 헤로인이 합법이라면 아마 그것으로 삶을 지워 버리려 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알코올 중독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처방전이 필요 없고 합법적이며 거의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술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들은 실제로 알코올에 중독된 것이 아니며, 술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술이 현실 도피의 촉매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문제는 알코올이 억제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들을 더욱 깊이 끌어내려, 도피하고 싶은 이유를 더 많이 만들어 준다는 점입니다. 잠에서 깨면 전날보다 기분이 더 나쁘니, 술을 더 많이 마십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문제를 지워 버리고 싶었던 이유, 다시 말해 ‘꽐라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날로 더 심각해지고, 그 결과 그 마취제가 더욱 절실해집니다.

폭음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애써 일군 모든 것을 불과 몇 주 만에 무너뜨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애초에 술에 의지하게 된 이유보다 술 자체가 자신의 삶을 더 심하게 파괴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이 짓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삶을 다시 꾸려 나가기로 마음먹고 술을 끊습니다. 이들은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술에 이점이 하나라도 있다고 믿는다면, 머지않아 그 모든 환상을 믿게 될 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기간은 짧아지고 폭음하는 기간은 길어질 것입니다. 이런 유형은 드물지만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의 폭음자가 가장 흔합니다. ‘석 달 마시고, 석 달 쉬는’ 유형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술을 그리워하며 비참함과 박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박탈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인정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는 다른 모든 사람을 대놓고 비판합니다. ‘나만 잘났다는 식’으로 구는, 정말이지 꼴 보기 싫은 금주자가 되는 겁니다. 이들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마다 자신을 다잡으며, 마시고 싶은 충동에 끊임없이 저항합니다. 온통 거기에만 신경이 쏠려 있습니다. 결국 삶에 무슨 일이 생기고 저항할 힘이 약해지면, 더는 버틸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 이들은 ‘댐’과 같은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물이 계속 쌓이면서 댐에 가해지는 압력이 너무 커지면, 댐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튼튼해 보이던 댐도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안타깝게도 폭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려면 엄청난 자제력을 어마어마하게 발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압력이 쌓이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나 큰 사교 모임 한 번이면 쾅, 결심이 무너집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동안 마시지 못한 몫을 벌충합니다. 그 약물이 필요해지는 것은 바로 그 약물 때문이므로, 처음에 많이 마실수록 다음 날 더 많이 필요해집니다. 술을 마실 때는 마시는 게 싫고, 마시지 않을 때는 마시지 않는 게 싫습니다. 마시지 않는 기간에는 그저 잠시 금주 중일 뿐입니다. 잠시 금주 중이라는 것은 일정 기간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니, 결국 다시 마시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 딱한 사람이 자신이 금주에 실패했다고 진심으로 믿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금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별로 즐겁지 않으니, 결국에는 괴롭기는 마찬가지여도 계속 마시는 편이 더 쉬워집니다.

폭음하는 사람들은 술을 끊었든 잠시 금주 중이든, ‘나만 잘났다는 식’으로 구는 금주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몇 년 동안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는, 자신이 한때 하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데 온 시간을 쏟는 부류입니다. 이렇게 남을 비판하는 유형도 두 부류로 나뉩니다.

  1. 술을 끊었지만 마시지 않기 위해 의지력과 절제, 끊임없는 자제력을 동원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여전히 술을 그리워하며 자신이 정말로 희생을 치렀다고 믿는 ‘회복 중이라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의지가 약해 보일 테니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고, 대신 ‘나만 잘났다는 식’으로 행동하기로 합니다.
  2. 술을 전혀 마셔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전혀 마셔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첫 잔을 마셔 보고 너무나 싫어서 술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실 첫 잔이 안겨 주는 고약한 맛과 끔찍한 영향을 이겨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술을 마셔 봅니다. 이들은 비음주자입니다. 그 약물이 만들어 내는 어떤 환상에도 빠진 적이 없기 때문에 중독된 적도 없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대체 왜 술을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그 때문에 겉으로는 다소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며, 헤로인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태도와 정확히 같습니다. 헤로인 중독자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끊고 싶어 하는지 안다면, 이들 역시 그렇게 쉽게 그들을 비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술을 끊을 때 정말 좋은 점은 여러분이 ‘나만 잘났다는 식’으로 구는 금주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술의 덫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그렇게 되겠지만, 여전히 술을 마셔야 하고 수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고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안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한때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테니, 분명 남을 비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중독 상태에 붙잡아 두는 것은 오직 두려움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두려움이 워낙 강력해서 완전히 끊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찹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 생각합니다…